문화유적지

양진당(養眞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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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24-11-06 17:12 조회2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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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01.png 양진당(養眞堂)

 

문화재 지정

소재지

시  대

소유자

형태 및 구조

수  량

대한민국 보물 제 1568호

(2008년 7월 10일 지정)

* 문화재 등급 승격되었음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214번지

1626년

풍양조씨 문중
(豐壤趙氏 門中)

목조, 한식 전통고가

71.45평(236.2㎡)

 

이 건물은 검간(黔澗) 조정(趙靖)선생의 연거소로 양오진(養五眞)의 뜻을 취하여 당명(堂名)을 삼은 것이라 한다. 이 건물은 약간 경사진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정면은 9칸이나 되고 남방 다습 지역의 고상식 주거에 속하는 것으로 건물 바닥을 지면에서 1미터 이상 높게 마련하면서 고상형에서는 보기 드물게  구들을 설치한 점에서 조선시대 주거 유형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이다. 원래는 口字型이었으나 지금은 좌우가 약간 다른 ㄷ字型으로 남아 있으며, 좌측은 창고로, 우측은 방을 만들었고 정면은 맞배 지붕이다. 원래 이 건물의 재목은 봉화 춘양에서 자생하는 양질의 춘양목을 낙동강에 땟목을 띄어 운반해 온 것으로 그 때의 규모로 99칸이었다고 전한다.

 

그동안 이 건물은 여러 번 중수를 거듭하였는데, 1981년 11월에 해체하는 과정에서 종도리(宗道理)에서 "숭정후(崇禎後) 180년 丁卯 11月 18日 乙卯 상택주(上宅主) 조술겸(趙述謙)" (1807년 순조7년)이란 기록과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상량문에는, "天啓六年 丙寅 12月 28日 丙辰 上監董 趙基遠" 이란 기록이 있어 이 때는 1626년(인조4)임을 알 수 있다. 검간 조정이 처가인 안동의 천전동에 있던 가옥을 옮겨 지은 것으로 상량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로써 보면 양진당은 1626년에 건립하고 1807년에 중수하였으며 1980년에 건물을 해체하고 1981년에 다시 복원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방이 두줄로 나열되어 있는 겹집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도 특색이다. 그리고 기둥은 굵은 부재를 사용하면서도 모서리를 접어서 투박하게 보이지 않게 하는 기술적 성숙도를 보이고 있어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높은 건물로 평가된다.

 

양진당은 건립 이후 존모(尊慕)의 현장으로, 강학(講學)의 현장으로, 문회(文會)의 현장으로 널리 활용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현재는 풍양조씨 연수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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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당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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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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